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떠올리면 먼저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 내는 눈부신 소리가 생각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장엄한 시작이나 〈알프스 교향곡〉의 광대한 풍경처럼, 그는 악기들의 색채를 조합해 귀 앞에 하나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작곡가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후기 작품 가운데에는 그 화려한 세계에서 한 걸음 물러나, 현악기만으로 깊은 사색을 이어가는 음악이 있습니다.
〈메타모르포젠〉은 그러한 슈트라우스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관악기의 찬란한 울림도, 타악기의 극적인 충격도 없습니다. 대신 서로 다른 길을 걷는 현악기의 선율들이 겹쳐지고 흩어지면서, 쉽게 끝나지 않는 하나의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이 작품을 긴 독백에 비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 목소리가 홀로 말해서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한 사람의 내면처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관현악의 대가가 현악기만 남겼을 때
〈메타모르포젠〉의 부제는 ‘23개의 독주 현악기를 위한 습작’입니다. 여기서 ‘습작’이라는 말 때문에 가벼운 연습곡을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완성도 높은 작품 안에서 현악기의 표현과 선율의 결합 가능성을 깊이 탐구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습니다. 연주 시간은 대체로 25분 안팎이며, 여러 악장으로 나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편성은 바이올린 10대, 비올라 5대, 첼로 5대, 더블베이스 3대입니다. 중요한 것은 연주자가 스물세 명이라는 숫자보다 각자 독립된 성부를 맡는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에서는 같은 파트의 여러 연주자가 하나의 선율을 함께 연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에서는 스물세 개의 개별적인 선이 서로 얽히며 음악을 이룹니다.
물론 모든 악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함께 움직이고, 때로는 몇 개의 성부만 앞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각 목소리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음악의 밀도를 바꿉니다. 커다란 현악 합주의 풍부함 속에서도 실내악처럼 서로의 호흡을 세심하게 듣는 감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무너진 극장과 함께 흔들린 음악의 세계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1945년에 걸쳐 구체화되었습니다. 스위스의 지휘자 파울 자허가 취리히 콜레기움 무지쿰을 위한 현악 작품을 의뢰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으며, 초연은 1946년 1월 25일 자허의 지휘로 이루어졌습니다. 작품이 탄생하던 시기는 슈트라우스가 오랫동안 살아온 음악적 세계가 전쟁 속에서 무너져 내리던 때였습니다.
그에게 특히 큰 충격을 준 사건은 1943년 뮌헨 국립극장의 파괴였습니다. 그곳은 아버지가 호른 연주자로 활동했고,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오페라를 접했던 공간이었습니다. 이후 드레스덴과 베를린, 빈의 오페라 극장들에도 전쟁의 파괴가 이어졌습니다. 슈트라우스에게 극장은 건물인 동시에 가족의 기억과 자신의 작품, 오랜 음악 전통이 축적된 장소였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메타모르포젠〉은 흔히 파괴된 문화 세계를 애도하는 음악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이를 특정 극장 하나를 위한 추도곡이나 작곡가의 명확한 정치적 선언으로 단정하면 작품의 의미가 좁아집니다. 역사적 배경은 음악의 무게를 이해하는 출발점이지만, 모든 선율에 하나의 사건이나 감정을 대응시키는 설명서는 아닙니다.
‘변용’은 같은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입니다
‘메타모르포젠’은 변화 또는 변용을 뜻합니다. 이 제목은 작품의 분위기뿐 아니라 음악이 전개되는 방식과도 연결됩니다. 하나의 선율을 제시한 뒤 서로 구분되는 변주를 차례로 늘어놓기보다는, 짧은 음악적 생각들이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면서 이어집니다. 선율과 리듬, 화음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변화합니다.
어떤 악기가 내놓은 짧은 선율을 다른 악기가 이어받으면, 음색과 높이, 주변의 화음이 달라집니다. 앞에서는 조용한 물음처럼 들리던 움직임이 뒤에서는 더 절박한 호소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같은 재료가 돌아오더라도 그때 함께 울리는 소리가 달라지므로, 음악의 표정도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누군가 오래된 일을 되짚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꺼낸 기억이 다른 기억과 연결되면서 뜻밖의 무게를 얻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반복도 그런 방식으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새로 등장했는지만 찾기보다, 이미 들었던 생각이 어떤 모습으로 달라졌는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스물세 개의 선율이 하나의 내면처럼 들리는 이유
〈메타모르포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은 대위법입니다. 대위법은 서로 독립된 선율들을 함께 엮는 방법을 말합니다. 한 악기가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배경이 되는 관계만으로 음악을 만들지 않고, 여러 선율이 각자의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흐름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한 성부가 길게 노래하는 동안 다른 성부가 더 짧은 움직임으로 그 사이를 채우기도 합니다. 어느 선율이 끝나기 전에 다음 선율이 시작되면 음악은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은 한 문장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리다가, 어느새 그 안에서 시작된 다른 문장을 따라가게 됩니다. 긴 독백처럼 느껴지는 지속성은 이러한 겹침에서도 생겨납니다.
따라서 가장 높은 바이올린 소리만 따라가면 음악의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습니다. 중간 음역의 비올라와 첼로가 흐름을 이끌기도 하고, 낮은 성부의 움직임이 전체 화음의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모든 선율을 동시에 알아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 관심을 낮은 음역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같은 음악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슬픔은 작은 소리로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작품의 시작은 낮은 현악기의 어두운 울림으로 귀를 이끕니다. 이때 음악은 선명한 선율 하나를 곧바로 내세우기보다, 여러 소리가 만들어 내는 무게와 긴장을 먼저 느끼게 합니다. 비슷한 현악 음색 안에서도 음역과 화음의 간격이 달라지면서 소리의 깊이가 변합니다. 악기의 종류를 많이 바꾸지 않고도 풍부한 색채를 만드는 슈트라우스의 솜씨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음악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속도와 음량으로 가라앉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흐름이 빨라지고 성부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억눌려 있던 에너지가 크게 솟아오르는 대목도 있습니다. 음량의 확대뿐 아니라 선율들이 더 촘촘하게 맞물리는 과정이 긴장을 높입니다. 슬픔이 고요한 체념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음악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조 뒤에 다시 느린 흐름이 돌아오면, 처음의 어두운 소리도 다르게 들립니다. 중간의 격렬한 움직임을 이미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으로 돌아왔는데 그곳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 것과 비슷합니다. 이 작품을 들을 때에는 절정이 얼마나 큰 소리로 나타나는지만큼, 그 이후 음악이 어떻게 가라앉는지도 살펴볼 만합니다.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내는 베토벤의 기억
작품의 끝부분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의 제2악장, ‘장송행진곡’의 선율이 낮은 현악기에서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악보에는 ‘추모하며’라는 뜻의 ‘In memoriam!’이 적혀 있습니다. 앞서 이어지던 음악의 흐름 속으로 다른 시대의 음악이 들어오면서, 개인적인 사색처럼 들리던 작품에 더 넓은 역사적 울림이 생깁니다.
이 인용은 마지막 순간 갑자기 붙인 장식처럼만 들리지 않습니다. 작품 앞부분부터 등장하던 음악적 움직임과 연결되어, 끝에 이르러 그 익숙함의 근원을 알아차리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작품 전체를 베토벤의 선율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슈트라우스는 여러 음악적 재료를 결합해 자신만의 긴 흐름을 만들어 갑니다.
베토벤의 장송행진곡을 모른다고 해서 감상이 막히지는 않습니다. 먼저 〈메타모르포젠〉을 끝까지 들은 뒤 베토벤의 해당 악장 도입부를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부분으로 돌아오면 좋습니다. 인용된 선율의 존재를 아는 것과, 긴 음악을 지나 그 선율을 실제로 만나는 경험은 서로 다릅니다.
독백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끝까지 따라가 보세요
처음 들을 때에는 스물세 개의 성부나 작품의 구조를 모두 파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시작의 무게, 중간에 솟아오르는 움직임, 마지막에 남는 낮은 울림을 따라가 보십시오. 하나의 악장으로 이어지는 작품이므로, 가능하다면 약 25분 동안 다른 일을 잠시 멈추고 음악의 호흡을 경험하는 편이 좋습니다.
두 번째에는 듣는 위치를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바이올린의 선율을 따라갔다면 이번에는 비올라와 첼로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어떤 선율이 다른 성부로 넘어가는지, 여러 목소리가 겹칠 때 긴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면 처음에는 막연했던 음악의 결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메타모르포젠〉이 보여 주는 슈트라우스의 또 다른 얼굴은 단지 화려함을 버리고 슬퍼하는 노작곡가의 모습만은 아닙니다. 그는 여기에서도 소리의 층위를 정교하게 설계하고, 선율을 변형하며, 오랜 시간의 흐름을 조직합니다. 다만 그 기술이 눈부신 광경 대신 내면의 깊이를 향합니다. 마지막 소리가 사라졌을 때 처음의 선율이 어떻게 기억되는지 돌아보십시오. 긴 독백을 따라오는 동안 달라진 것은 음악의 모습만이 아니라, 그 음악을 듣는 우리의 귀이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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