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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잃고 영혼을 얻은 천상의 목소리, 카스트라토

by warmsteps 2025.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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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라토 관련 그림

 

 

카스트라토는 17세기부터 18세기 유럽 오페라 무대와 교회 음악에서 독특한 음역과 존재감으로 각광받았던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 거세를 통해 고음역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었고, 당대 음악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카스트라토의 탄생 배경과 종교적 영향, 그리고 문화적 위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왜 그들은 목소리를 희생해야 했을까?

카스트라토의 등장은 음악적 실험의 결과가 아닙니다.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 16세기말부터 18세기까지 이어진 오페라의 황금기는 새로운 형태의 보컬 표현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작곡가들은 고음역의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표현을 낼 수 있는 보컬을 필요로 했고, 성인 여성의 무대 등장이 종교적, 사회적으로 제한되던 시대에 ‘소년의 목소리’를 유지한 남성이 그 역할을 대체한 것입니다.

또한 바티칸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 교회에서는 여성의 성가대 참여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고음 파트를 소화할 수 있는 남성 보컬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수요 속에서 어릴 때 거세한 소년들이 자라 카스트라토가 되었고, 그들은 남성의 폐활량과 체격, 그러나 여성적인 고음을 갖춘 존재로 오페라와 교회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17세기말에는 이들이 너무 인기를 끌어 사회적으로도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가난한 집안에서는 아들을 음악적 스타로 키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거세시키는 사례도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단순한 음악 수요를 넘어서, 당시 유럽 사회의 젠더 규범, 종교적 엄격성, 계층 이동 욕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신의 목소리로 불렸지만, 인간적인 삶을 살았던

 

 

카스트라토와 가톨릭 교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16세기부터 여성의 노래는 교회 내에서 ‘음란’하다고 간주되었고, 이에 따라 고음 파트를 여성 대신 소화할 남성이 필요해졌습니다. 이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카스트라토였습니다. 특히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 합창단에는 카스트라토가 필수 인원으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바티칸은 공식적으로 거세를 금지했지만, 암묵적으로는 이러한 제도를 묵인하고 있었습니다. 카스트라토가 고음역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종교적 이상과 음악적 이상이 충돌했던 대표적 사례이며, 실제로 많은 카스트라토가 교회 음악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파리넬리(Farinelli)나 카레스타(Carresta)와 같은 유명 카스트라토는 교회 행사와 미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신의 목소리로 간주되며 대우받았습니다. 심지어 귀족들과 교황의 개인 연주회에도 자주 초청받았으며, 그들의 존재는 단순히 음악가를 넘어 신성한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통은 19세기 중반에 들어 폐지되기 시작했으며, 1903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공식적으로 카스트라토의 교회 참여가 금지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카스트라토가 남긴 것들

카스트라토는 일반적인 음악적 존재를 넘어, 당시 유럽 문화의 특수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은 높은 대우를 받았고, 일부는 귀족 수준의 생활을 누렸으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오페라 무대에서의 카스트라토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인물이 아니라, 고귀한 이미지, 신비로운 존재, 비극적 서사를 함께 지닌 문화 아이콘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젠더 정체성과 관련된 논쟁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남성의 신체를 가졌지만 여성의 음역을 갖춘 이들은 당시 성별 이분법에 도전하는 존재였고, 실제로 많은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카스트라토는 상징적 인물로 묘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인생은 반드시 화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대다수의 카스트라토는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음악 교육이나 공연 기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거세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차별도 존재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들을 착취된 인권의 희생자로 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위대한 예술을 만든 존재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카스트라토의 음악은 대부분 녹음이 남아 있지 않지만, 역사적 기록과 극소수의 음원, 그리고 재현된 공연을 통해 그들의 문화적 의미는 계속 조명되고 있습니다. 현대에는 카운터테너가 그들의 자리를 이어받아 새로운 방식으로 과거의 음악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카스트라토는 단순히 고음의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종교와 문화, 사회적 맥락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등장한 독특한 존재였습니다.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윤리적, 예술적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의 흔적은 우리가 예술과 인권,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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