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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가 퍼포먼스인가? 존 케이지 4분 33초 논란 재조명

by warmsteps 2025. 7. 12.

존 케이지 음악 작품 관련 그림

 

존 케이지의 4분 33초(4′33″)는 현대음악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논란 많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연주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단지 ‘침묵’을 유지할 뿐이지만, 이 곡은 실제로 전 세계 수많은 무대에서 연주되며 예술의 개념을 바꾼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과연 이 침묵의 곡은 음악일까요, 아니면 퍼포먼스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4분 33초가 왜 중요한지, 그것이 던진 철학적 질문과 현대 예술계의 반응을 분석하며, 침묵 속에 숨겨진 가장 시끄러운 음악의 메시지를 함께 탐험해 보겠습니다.

4분 33초란 무엇인가, 침묵의 정의를 다시 쓰다

1952년 여름, 미국 뉴욕주의 우드스톡에 위치한 매버릭 콘서트홀.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는 무대에 올라 피아노 뚜껑을 열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 악장에 걸쳐 단 한 음도 연주하지 않고, 단지 정해진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곡을 마쳤습니다. 이때 연주된 것이 바로 존 케이지의 <4′33″>, 즉 '4분 33초'였습니다. 이 곡은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곡'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주변의 환경 소리, 청중의 기침, 바스락 거림, 바람 소리 등이 전부 음악이 되는 구조입니다. 존 케이지는 이 곡을 통해 "소리를 통제하는 것이 음악이 아니라,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는 것이 음악"이라는 철학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케이지는 젊은 시절 인도 철학과 선불교에 영향을 받았으며, 우연성(chance operation)을 작곡 방법론에 도입한 최초의 작곡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음악 세계는 ‘통제’보다는 ‘수용’에 가깝고, 그 대표작이 바로 <4′33″>인 셈입니다. 그는 이 곡을 통해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음악인가 퍼포먼스인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다

4분 33초는 '음악'으로 발표된 곡이지만, 실제로 소리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이건 음악이 아니다”라는 비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퍼포먼스 아트로 해석하면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공연 자체가 '음악의 부재'를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적 행위이며, 이는 곧 청중의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 예술적 장치입니다. 사실 이 곡은 전통적인 악보도 존재합니다. 각 악장은 정확한 시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연주자는 곡의 구조에 따라 정해진 타이밍에 뚜껑을 열고 닫는 등의 행동을 합니다. 이러한 절차적 구성은 이 곡이 단지 '가만히 있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의도된 청취 체험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음악은 반드시 소리가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20세기 중반 현대 예술계 전반에 걸쳐 중요한 화두였고, 존 케이지는 이를 음악이라는 장르를 통해 가장 급진적으로 풀어낸 작곡가였습니다. 퍼포먼스 아트의 세계에서도 4′33″은 개념 예술(Conceptual Art)의 선구적 작품으로 언급되며, “예술은 결과물이 아니라 아이디어 자체”라는 관점을 확장시켰습니다. 케이지는 침묵을 통해 소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듣는 행위 자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2025년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4분 33초,  삶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현대에 이르러 <4′33″>는 더 이상 기이하거나 도발적인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술과 청중의 관계, 감상이라는 행위의 본질, 그리고 소리와 침묵의 경계를 탐구하는 중요한 기준점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 특히 AI 음악이나 생성형 알고리즘 음악이 일반화되는 지금, 인간이 ‘의식적으로 듣는다’는 행위는 더욱 철학적인 가치로 다가옵니다. 2024년 현재, 존 케이지의 영향은 단순히 음악에 그치지 않고, 시각 예술, 설치미술, 사운드 아트, 심지어 명상 분야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요함과 내면적 감상이 중요해진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4′33″은 새로운 해석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곡을 통해 ‘침묵을 통한 치유’, ‘의식적 청취’ 같은 키워드를 떠올리며,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은 감각의 전환을 경험합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버전의 4′33″ 공연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현악, 관악, 심지어 합창 버전까지 등장했으며,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서도 수많은 리메이크 영상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이 곡이 ‘이슈’ 여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모두의 해석을 허용하는 열린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4분 33초>는 우리에게 일상 속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침묵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존 케이지의 <4′33″>는 단지 ‘침묵’의 곡이 아닙니다. 그것은 음악의 정의를 뒤흔들고, 청중의 역할을 뒤바꾼 역사적 작품이며, 퍼포먼스와 개념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 음악을 인식하는 방식에 의문을 품는다면, 이 곡은 가장 적절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오늘, 한 번쯤 아무 소리도 없는 그 4분 33초를 진지하게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 주변의 모든 소리가 당신만의 음악이 되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비로소 들리는 소리의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존 케이지가 우리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