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조성과 무조의 경계에서 펼쳐지는 클래식의 새로운 흐름

by warmsteps 2025. 9. 5.
반응형

조성과 무조 관련 그림

 

 

음악에서 조성은 수세기 동안 곡의 중심을 형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이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무조 음악'이라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합니다. 조성과 무조의 경계는 단순한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을 듣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이 글에서는 음계가 붕괴되고, 화성이 해방되며, 우리가 음악을 어떻게 듣고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음계 붕괴: 조성의 붕괴는 왜 일어났나?

19세기말, 브람스와 바그너를 기점으로 조성 음악의 구조는 극도로 팽창하게 됩니다. 화성은 더욱 복잡해지고, 전조는 빈번해졌으며, 감정 표현은 점점 더 격렬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곡가들은 기존의 장단조 체계로는 더 이상 자신들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조성 붕괴’라는 역사적 흐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역시 아르놀트 쇤베르크입니다. 그는 "이제 새로운 법칙이 필요하다"라고 선언하며, 조성의 중심 음 없이도 음악을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2음 기법(dodecaphony)이라는 새로운 작곡 원리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조성을 완전히 배제한 무조음악(atonality)의 핵심이 됩니다. 쇤베르크의 제자들인 베르크와 베베른 또한 이러한 조성 해체의 흐름을 계승했고, 점차 그 구조는 더욱 정교해지며 체계화되었습니다. 이후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리게티 등도 각자의 방식으로 조성 중심의 음악에서 탈피하며 새로운 음악 언어를 구축했습니다. 이로 인해 20세기 음악은 더 이상 조성이라는 뿌리에 의존하지 않는 ‘다성적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음계 붕괴는 단지 이론상의 실험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 변화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감정은 단순하고 조화로운 선율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고, 음악 역시 이러한 시대적 정서를 반영하여 ‘질서 없는 질서’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자유화성: 해방된 화성, 그 속의 질서

 

무조음악은 단순히 ‘조성이 없는 음악’이 아니라, 새로운 화성적 구조를 모색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자유화성(free tonality)은 기존의 장단조 체계를 넘어서면서도 전혀 무질서하지 않은 독창적인 질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자유화성의 특징은 규칙적인 화성 진행 없이도 곡 전체가 하나의 통일된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알반 베르크의 작품은 감성적인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조성에서 완전히 벗어난 화성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의 오페라 <보체크>는 무조성과 감성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자유화성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힙니다. 베르크는 무조 상태에서도 동기(motif)를 반복하며 음악에 응집력을 부여했고, 이는 듣는 사람이 혼란 없이 음악을 따라가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리게티나 슈톡하우젠은 음높이 중심의 화성을 넘어서, ‘음색’ 자체를 작곡 요소로 삼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음과 음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음의 질감, 공간감, 동적 구조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화성 체계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유화성은 단지 조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음악 언어를 재창조하는 예술적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화성은 ‘무한한 가능성의 장’입니다. 어떤 음도 중심이 될 수 있고, 그 중심은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바뀔 수 있습니다. 이는 철학적으로도 포스트모던의 유동성과 일맥상통하며, 고정된 해답보다 다양한 시선을 허용하는 음악 감상의 지평을 열어줍니다.

청취법: 무조 음악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많은 청중은 무조 음악을 처음 접할 때 낯설고 불편하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귀는 태어날 때부터 조성 음악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조 음악을 감상할 때는 기존의 '기승전결' 구조나 멜로디 중심의 청취 습관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 무조 음악은 전체 구조보다는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쇤베르크의 ‘현악 4중주 2번’은 중심음이 없이 진행되지만, 각 악절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이완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면 곡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둘째, 반복 감상이 중요합니다. 무조 음악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여러 번 들으며 음과 음 사이의 미묘한 연결과 정서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리게티나 베베른의 작품처럼 음표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가 담긴 경우, 반복 감상을 통해 마치 시를 음미하듯 곡의 의미가 천천히 드러납니다. 셋째, 음색 중심의 감상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음정이나 화성보다 소리의 질감, 악기 간의 대비, 공간에서의 울림 등을 중점적으로 감상하면 무조 음악이 더 풍부하게 다가옵니다. 이는 오히려 클래식 음악 감상의 폭을 넓히고, ‘듣는 방식’ 자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무조 음악은 듣는 사람에게도 열린 자세를 요구합니다. 정답이 없는 음악, 중심이 없는 음악 속에서 자신만의 감정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경험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확실성’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 음악은 단순한 청각적 경험을 넘어서, 철학적 사유와 감정의 성찰을 유도하는 예술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성과 무조의 경계는 단순한 음계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이 감정을 담고 전달하는 방식 자체의 혁신입니다. 음계 붕괴를 통해 시작된 자유화성은 음악을 더 개방적으로, 더 다양하게 만들었고, 청중에게도 새로운 감상법을 제안합니다. 익숙함을 내려놓고 낯선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 안에 새로운 감정과 사유의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