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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칼리아, 바흐와 북스테후데 두 거장의 발자취가 빚어낸 영혼의 작품

by warmsteps 2025.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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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와 북스테후드 두거장의 파사칼리아 관련 그림

 

파사칼리아(Passacaglia)는 고전 음악에서 변주 형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곡 형식입니다. 반복되는 베이스 라인 위에 화성과 리듬, 멜로디를 점진적으로 쌓아 올리는 구조는 단순하면서도 극적인 음악 효과를 만들어내며, 바로크 시대 오르간 음악의 대표 형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형식을 가장 탁월하게 다룬 두 명의 작곡가가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J.S. Bach)와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 Buxtehude)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거장이 남긴 파사칼리아 작품의 특징을 비교하며, 그들이 담아낸 음악적 철학과 감성을 살펴보겠습니다.

디트리히 북스테후데 – 형식의 씨앗을 뿌린 선구자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는 독일-덴마크 국경 지역 출신의 오르간 작곡가이자 연주자입니다. 그는 당시 루터교 예배와 독일 북부 오르간 음악의 중심인물이었으며, 바흐가 직접 그의 음악을 배우기 위해 약 400km를 도보로 찾아갈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북스테후데의 대표적인 파사칼리아 작품인 〈Passacaglia in D minor, BuxWV 161〉는 그의 작곡 기법과 형식 실험이 응축된 곡입니다. 이 곡은 4마디의 반복 베이스 주제를 중심으로 총 28개의 변주를 전개하며, 각 단락은 7개씩 묶여 4개의 주요 섹션으로 나뉘는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통념적 구조보다 훨씬 치밀하고 기하학적 구성을 보여줍니다.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는 전체적으로 명상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지니며, 리듬보다는 선율의 흐름과 화성의 변화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종교적 묵상과 내면의 울림을 더 중시한 그의 음악 세계는, 후대 작곡가들에게 ‘음악으로 사유하는 법’을 보여준 좋은 사례로 평가됩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 형식의  꽃을 피운 완성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북스테후데 이후 약 80년 가까이 활동한 작곡가로, 바로크 음악의 정점을 찍은 인물입니다. 그는 북스테후데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실제로 그의 파사칼리아 작품은 북스테후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표 사례입니다.

바흐의 〈Passacaglia and Fugue in C minor, BWV 582〉는 북스테후데의 곡보다 더 크고 웅장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8마디의 반복 베이스 패턴을 바탕으로 20여 개의 정교한 변주를 전개하며, 이어지는 푸가(fugue)는 동일한 주제를 대위법적으로 재구성한 섹션으로 연결됩니다.

바흐의 파사칼리아는 구성의 치밀함뿐 아니라, 극적 긴장감, 감정의 고조, 대위법적 화려함이 압도적인 특징입니다. 변주가 진행될수록 음향적 밀도와 감정의 파고가 증폭되며, 마지막 푸가에서는 곡 전체가 하나의 건축물처럼 완성되는 구조미를 보여줍니다. 북스테후데가 ‘묵상’에 집중했다면, 바흐는 ‘구조와 드라마’의 정점을 구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거장의 음악이 우리에게 남긴 것

두 작곡가는 같은 형식을 사용했지만, 그 안에 담아낸 음악 세계는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북스테후데는 루터교 전통과 교회 음악의 기능적 성격을 중심으로, 신앙적 성찰과 내면의 평화를 표현하려 했습니다. 그의 파사칼리아는 장식적 기교보다는, 오르간이라는 악기를 통해 영적 울림을 전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즉, 음악이 ‘기도’의 형태로 존재하는 셈입니다.

반면 바흐는 이미 음악이 예술로서 확립되던 시대의 인물로, 음악 안에서 수학적 구조, 감정의 표현, 신학적 메시지를 모두 통합하려 했습니다. 그의 파사칼리아는 단순한 예배 음악이 아닌, 독립적 예술 작품으로 감상 가능한 완성도를 지닙니다.

결국 파사칼리아라는 형식을 통해, 북스테후데는 음악의 ‘본질적 경건함’을, 바흐는 음악의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준 셈입니다.

 

파사칼리아는 단순한 반복 형식이 아닌, 작곡가의 철학과 감정이 녹아든 깊이 있는 음악 형식입니다. 북스테후데는 그 형식의 기초를 닦은 선구자였고, 바흐는 이를 통해 예술적 완성도를 극대화한 계승자였습니다. 두 작곡가의 파사칼리아를 비교해 감상한다면, 단순한 곡의 차원을 넘어, 음악이 시대를 어떻게 반영하고, 어떤 철학을 담을 수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두 작품은 반드시 감상해봐야 할 클래식 명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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