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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세 음이 되풀이될 뿐인데 풍경이 달라진다|마랭 마레 〈생트주느비에브 성당의 종소리〉

by warmsteps 2026.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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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악
실내악 연주

 

 

 

같은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도 음악은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반복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그 위로 새로운 선율이 지나가고, 악기들의 움직임이 촘촘해지며, 익숙했던 울림까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마랭 마레의 〈생트주느비에브 성당의 종소리〉는 이렇게 작은 재료로 풍부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바로크 음악의 매력을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이 음악의 중심에는 세 음으로 이루어진 반복형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 전체가 세 음만으로 되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되풀이되는 바탕 위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다 감바가 노래하고 움직이며, 클라브생이 화음과 리듬을 받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이 더욱 잘 들립니다. 이 작품의 감상은 바로 그 두 층을 함께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파리의 종소리가 작은 실내악이 되기까지

마랭 마레는 1656년에 태어나 1728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입니다. 프랑스 궁정에서 활동한 그는 자신이 연주하던 악기의 섬세한 음색과 표현 가능성을 작품에 깊이 담았습니다. 그의 음악에서는 큰 소리로 압도하는 효과보다 음의 시작과 끝, 장식과 호흡의 작은 차이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생트주느비에브 성당의 종소리〉는 1723년에 출판된 작품집 〈라 감므와 그 밖의 기악곡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어 제목은 ‘Sonnerie de Sainte-Geneviève du Mont de Paris’입니다. 여기서 ‘소느리’는 종이 울리는 소리나 종을 울리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제목의 배경은 파리 생트주느비에브 수도원 성당의 종소리와 연결됩니다.

 

다만 이 작품을 실제 종소리의 정확한 녹음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마레는 종의 울림을 떠올리게 하는 짧은 반복을 음악의 출발점으로 삼고, 그 안에서 악기들이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움직임을 탐구합니다. 도시의 소리가 실내악의 재료가 된 셈입니다. 성당의 내부나 거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아도, 종처럼 되돌아오는 소리만 붙잡으면 음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 음을 기억하면 음악의 길이 보입니다

시작 부분에서 귀에 익혀 둘 음은 ‘레–파–미’입니다. 악보의 음이름으로는 D–F–E에 해당합니다. 레에서 파로 올라갔다가 미로 내려오는 이 짧은 모양이 반복되며 작품의 바탕을 이룹니다. 음악이 복잡해지기 전에 처음의 몇 차례 반복을 가볍게 따라 불러 보면 이후의 변화를 듣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이처럼 짧은 음악적 모양을 거듭 되풀이하는 방식을 ‘오스티나토’라고 합니다. 반복되는 저음형 위에서 다른 성부가 변화하는 음악은 바로크 시대의 중요한 작곡 방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새로운 선율을 계속 추가하는 대신 일정한 틀을 남겨 두고, 그 틀과 매번 다른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같은 높이의 세 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변화 없이 고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곡이 진행되면 조성이 달라지고, 반복형의 음역과 리듬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레–파–미’를 끝까지 기계적으로 확인하기보다, 처음에 들었던 짧은 모양이 어떻게 다른 자리에서도 살아남는지 들어보는 편이 좋습니다.

바이올린과 감바, 종 위로 서로 다른 목소리가 지나갑니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편성은 바이올린, 비올라 다 감바, 그리고 클라브생을 중심으로 한 통주저음입니다. 클라브생은 하프시코드라고도 부르는 건반악기이며, 피아노처럼 현을 두드리는 대신 현을 뜯어 소리를 냅니다. 짧고 또렷한 발음이 현악기의 지속되는 소리와 어우러져 음악의 윤곽을 만듭니다.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처럼 다리 사이에 놓고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첼로와는 다른 계통의 악기입니다. 지판에 프렛이 있고 활을 잡는 방식도 다릅니다. 이 곡에서는 처음에 반복되는 바탕을 함께 울리다가, 점차 더 활발한 선율과 장식을 펼치며 독립적인 목소리를 드러냅니다.

 

처음부터 모든 악기가 같은 비중으로 앞에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낮은 반복을 먼저 들려준 뒤 바이올린이 들어오면 음악에 새로운 방향이 생깁니다. 이후에는 바이올린과 감바가 번갈아 움직이거나 함께 얽힙니다. 높은 소리만 따라가다가 한 번쯤 감바 쪽으로 관심을 옮겨 보십시오. 조금 전까지 배경처럼 들리던 악기가 음악의 표정을 바꾸는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같은 바탕 위에서 풍경이 달라지는 세 가지 이유

먼저 귀에 들어오는 변화는 음의 촘촘함입니다. 비교적 여유 있게 움직이던 선율에 짧고 빠른 음들이 늘어나면 음악이 더 활발하게 느껴집니다. 이때 연주 전체의 박자가 빨라진 것인지,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음이 들어온 것인지를 구별해 보면 좋습니다. 바탕은 일정하게 흐르는데 그 위의 움직임만 바빠지는 경우에도 충분한 추진력이 생깁니다.

 

다음은 악기 사이의 관계입니다. 한 악기가 선율을 펼치고 다른 악기가 받쳐 주던 장면에서, 두 악기가 함께 움직이는 장면으로 바뀌면 소리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같은 반복형이 아래에서 이어져도 위쪽의 대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음악 전체의 인상이 바뀝니다. 독창을 듣다가 이중창을 듣는 순간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마지막은 화음과 조성의 변화입니다. 작품은 라단조(D minor)에서 출발해 가단조(A minor)와 바장조(F major)의 영역을 거친 뒤 다시 라단조로 돌아옵니다. 조성이 달라지면 반복형을 둘러싼 화음의 관계도 달라집니다. 익숙한 모양이 계속 들리는데도 주변의 빛깔이 바뀌는 것입니다. 다만 단조는 슬프고 장조는 즐겁다는 식으로 감정을 고정하기보다, 같은 재료의 무게와 밝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들어보면 좋습니다.

반복되는 저음은 배경이면서 동시에 기준점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통주저음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통주저음은 특정 악기의 이름이 아니라 저음과 그에 따른 화음으로 음악을 받치는 연주 방식입니다. 클라브생 같은 화음악기와 저음악기가 함께 담당할 수 있으며, 연주 편성에 따라 울림의 두께와 성격도 달라집니다.

 

반복되는 바탕은 위쪽 선율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듣는 사람도 그 틀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선율이 복잡해져도 흐름을 놓치지 않습니다. 길을 걸을 때 멀리 보이는 탑을 기준으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음악 속 세 음은 계속 돌아오는 작은 이정표가 됩니다.

 

그렇다고 저음이 언제나 가장 크게 들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율에 귀를 빼앗기면 잠시 반복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다시 낮은 소리를 찾아보십시오. 조금 전까지 흩어진 듯 들리던 음들이 일정한 바탕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처럼 듣는 층을 바꾸는 경험이 바로크 음악을 능동적으로 감상하는 좋은 연습이 됩니다.

처음에는 종을, 다음에는 종 사이의 변화를 들어보세요

첫 감상에서는 시작의 세 음을 기억한 뒤 음악 전체를 편하게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반복이 귀에 익으면 모든 음을 세거나 변주의 횟수를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 순간 소리가 풍성해지고, 어느 순간 한 악기의 움직임이 유난히 또렷해지는지 느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두 번째에는 바이올린과 감바 가운데 하나를 골라 따라가 보십시오. 바이올린의 선율이 길게 이어지는 동안 감바는 무엇을 하는지, 감바가 활발하게 움직일 때 바이올린은 어떻게 공간을 내주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같은 재료를 연주해도 악기의 음역과 발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가능하다면 연주 영상에서 활의 움직임과 서로의 진입을 기다리는 순간도 함께 관찰해 보시면 좋습니다.

 

연주를 비교할 때에는 전체 속도만큼 음을 얼마나 길게 이어 주는지, 짧은 음을 얼마나 또렷하게 구분하는지에도 주목할 만합니다. 클라브생의 화음이 촘촘하면 바탕이 풍성해지고, 상대적으로 간결하면 현악기의 움직임이 더 드러납니다. 같은 종소리의 틀 안에서도 연주자가 만들어 내는 공간과 호흡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어야 변화가 들립니다

〈생트주느비에브 성당의 종소리〉가 흥미로운 이유는 세 음이라는 작은 재료가 복잡한 음악으로 바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반복이 사라지지 않은 채 변화와 공존한다는 데 더 큰 매력이 있습니다. 듣는 사람은 익숙한 바탕에서 안정감을 얻으면서도, 그 위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움직임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 경험은 변주를 이해하는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음악이 달라진다는 것은 언제나 처음의 모습을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모양을 남겨 두고 음의 간격과 밀도, 악기의 관계와 화음의 환경을 바꾸어도 충분히 다른 장면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마레는 제한된 재료가 상상력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심한 선택을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들려줍니다.

 

다음에 이 작품을 들으실 때에는 마지막 무렵 다시 귀에 들어오는 세 음에 잠시 집중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단순하게 느껴졌던 반복이 여러 선율과 음색을 지나온 뒤에도 여전히 같은 인상으로 들리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종은 비슷한 간격으로 울리지만 그 종을 듣는 우리의 귀에는 이미 여러 장면이 쌓여 있습니다. 변한 것은 음악의 풍경이면서, 그 풍경을 알아보는 우리의 감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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