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릴리 불랑제의 《슬픈 저녁에》는 낮은 음역에서 화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되풀이되며 시작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무거운 걸음이 하나씩 이어지는 듯합니다. 그 위로 선율이 떠오르고, 악기들이 차례로 겹치면서 처음에는 조용했던 음악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팽팽해집니다. 그런데 끝까지 듣고 나면 가장 큰 소리보다, 그 소리가 물러난 뒤 멀리서 다시 들려오는 선율이 오래 남습니다.
이 곡과 비슷한 시기에 불랑제는 《어느 봄날 아침에》도 썼습니다. 제목만 보면 서로 다른 풍경을 그린 두 작품 같지만, 중심 선율을 공유합니다. 한쪽에서 무거운 걸음 위에 놓였던 선율은 다른 쪽에서 가볍고 재빠르게 움직입니다. 24세에 세상을 떠난 작곡가의 마지막 시기를 이해하는 데 이 두 곡만큼 좋은 출발점도 드뭅니다. 같은 선율로 얼마나 다른 감정을 빚어낼 수 있었는지 곧바로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4세의 마지막 시기에 쓰인 두 풍경
릴리 불랑제는 1913년 칸타타 《파우스트와 엘렌》으로 프랑스 로마 대상 작곡 부문에서 여성 최초로 1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 뒤인 1917~1918년에 《슬픈 저녁에》와 《어느 봄날 아침에》를 썼습니다. 《슬픈 저녁에》는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 바이올린·첼로·피아노를 위한 삼중주, 작곡가가 직접 편곡한 관현악판으로 남아 있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기록한 첫 연주는 불랑제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19년 2월 8일에 열렸습니다.
이 곡의 제목이 가리키는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악보를 따라가면 불랑제가 슬픔을 얼마나 여러 방식으로 들려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발걸음을 늦추는 무게로, 절정에서는 여러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드는 압력으로, 끝에서는 익숙한 것이 멀어지는 거리로 느껴집니다. 관현악판을 들으면 이 세 가지 변화가 특히 뚜렷합니다.
첫 화음은 왜 무거운 걸음처럼 들릴까
도입부에서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은 낮은 화음의 반복입니다. 선율이 아직 귀에 익지 않았을 때도 화음이 돌아오는 간격은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앞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걷듯, 한 번 소리가 울리면 다음 소리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 위에 선율이 놓이면서 음악에는 두 가지 움직임이 생깁니다. 아래에서는 걸음이 이어지고, 위에서는 선율이 그 걸음보다 길게 숨을 쉽니다.
이 곡은 세 박 계열로 움직입니다. 세 박이라는 말에서 왈츠의 가벼운 회전을 떠올리기 쉽지만, 여기서는 느린 속도와 낮은 음역, 화음을 짚는 방식이 그 움직임에 무게를 더합니다. 처음 들을 때는 선율을 따라가다가 잠시 아래쪽 소리로 귀를 옮겨 보세요. 같은 맥박 위에서 선율이 앞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머무는 것처럼 들립니다. 불랑제는 첫머리에서부터 속도와 호흡을 서로 다르게 느끼게 합니다.
잠깐 밝아진 뒤, 관현악은 어떻게 절정에 닿을까
곡이 진행되면서 화음의 색이 달라지고, 잠시 장조의 밝음이 비칩니다. 이 대목을 들으면 첫머리에서 느낀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 듯합니다. 그 변화가 귀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후 소리가 다시 무거워질 때 그 차이도 더 크게 느껴집니다. 저녁 내내 한 가지 빛만 비추고 있었다면 얻기 어려웠을 효과입니다.
절정으로 향할 때는 가장 크게 들리는 악기보다 그 뒤에 무엇이 보태지는지 들어보세요. 현악기가 이어 가는 선율 주변에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겹치고, 관현악판의 팀파니와 큰북은 아래에서 무게를 더합니다. 여러 성부가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화음은 더 거칠고 팽팽하게 들립니다. 앞에서 조용히 걸음을 짚던 음악이 어느 순간 버티기 힘든 압력으로 바뀝니다. 그 변화는 소리가 커지는 속도만큼이나, 서로 다른 소리가 쌓이는 과정에 달려 있습니다.
‘기억처럼 멀리서’ 돌아오는 선율
불랑제는 악보에서 선율이 돌아오는 한 대목에 ‘기억처럼 멀리서’라는 뜻의 지시를 남겼습니다. 처음 들었던 선율을 알아볼 수 있지만, 그 주위를 채우던 소리의 밀도와 무게가 달라져 있습니다. 음량이 작아졌다는 사실보다 선율이 어디쯤에서 들려오는 듯한지가 중요해지는 순간입니다. 가까이에서 이어지던 이야기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의 고요도 도입부의 고요와 다르게 다가옵니다. 첫머리에서는 낮은 화음이 앞으로 펼쳐질 음악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끝에서는 방금 들은 음악이 사라지는 데 귀가 머뭅니다. 첫 화음과 마지막 몇 마디를 이어 들어보면, 불랑제가 한 곡 안에서 같은 조용함에 서로 다른 방향을 부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녁을 들은 뒤, 같은 선율이 깨어나는 아침으로
《슬픈 저녁에》를 들은 다음에는 《어느 봄날 아침에》를 이어 들어보세요. 두 곡은 중심 선율과 세 박 계열의 움직임을 공유합니다. 그런데 아침의 음악에서는 빠른 움직임과 가벼운 악기 배치 덕분에, 저녁의 무게 속에 있던 선율이 훨씬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들립니다. 선율의 음을 하나씩 대조하기보다, 익숙한 음의 윤곽이 어디에서 불쑥 귀에 들어오는지 기다려 보셔도 좋습니다.
그다음 저녁의 첫머리로 돌아오면 처음에는 지나쳤던 것이 들립니다. 아침을 가볍게 움직였던 선율이 저녁에서는 낮은 화음 위에 오래 머뭅니다. 한쪽을 듣고 돌아오면 다른 쪽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불랑제가 남긴 두 풍경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남든, 그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은 같은 선율을 둘러싼 속도와 음색, 그리고 소리 사이의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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